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솔선해서 병역의 의무를 실천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또 군대를 유지하고 공공시설이나 도로 등의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자신들의 사비로 충당했다. 그러면서 귀족들은 자신들이 그런 실천을 하고 실천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그것으로 귀족은 그들의 존재가치를 확인했다.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출발이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불문율이었고, 그만큼 그들에겐 품격, 품위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고위층이 솔선수범하기는커녕, 못되고 고약한 일을 도맡아 저지르는 형국이다. 그리하여 부와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존경은 물 건너가고 오히려 적대심만 커간다. 우리 사회는 왜 그런 고귀한 ‘격’을 갖출 수 없을까 하는 황량한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안성에 새로운 전형을 창조할 만한 모임이 하나 생겨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에 소개한다.

이 신생의 모임 이름은 ‘칠현회’다. 칠현회라는 이름은 칠장사 혜소국사에 얽힌 전설에서 기인한다. 이야기는 이렇다. 혜소국사가 지금의 칠장사를 찾았을 때 7명의 도적이 얼씬거렸다. 어느 날 도적 하나가 절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물바가지가 순금인 것을 발견하고는 슬쩍 품에 숨기고 돌아왔다. 그 뒤로 두 번째, 세 번째 하면서 7인의 도적이 차례로 물을 마시고 바가지를 하나씩 숨겨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숨겨온 바가지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한 도적이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고백하니 나머지 도적들도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7인의 도적은 결국 이것이 혜소국사의 신통력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국사를 찾는다. 그리고는 혜소국사의 설법에 감화되어 이후 7인의 현자로 거듭나게 된다. 그때부터 칠장사가 자리한 산을 ‘어질 현’자를 써 칠현산이라 불렀다. 칠현회라는 이름도 그와 같다. 7인의 현자가 되겠다는 의지다.

그럼 그 7인의 도적은 누구인가? 우선 두목을 소개한다. 그는 칠장사 주지 지강 스님이다. 지난해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인도애적 지원의 공로가 인정되어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한 그 스님 말이다. 2007년 칠장사 주지로 부임했으며, 매년 엄청난 규모의 나눔을 손수 실천하고 계신다. 독거노인 돕기, 무료급식 봉사, 청소년 장학금 지원, 이웃돕기, 전국백일장 개최 등등. 그 나눔을 다 말하기 어렵다. 지강 스님의 일상이, 매사가 그냥 나눔이기 때문이다. 종단에서든, 안성에서든, 대한민국에서든 지강 스님은 나눔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 두목 아래 여섯 명의 인사가 있다. 우선 총무를 맡고 있는 박종응 대림비료 대표. 친환경 고품질 퇴비를 생산하는 그는 수년 동안 사회복지시설에 비료를 기부했다. 또 금호스틸하우스 김운근 대표. 예쁜 집을 짓는 그도 기부하면 이곳저곳 빠지지 않는다. 현재 안성신문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회계사이면서 문필가이고, 꿈퍼나눔마을 대표인 정재흠 씨. 꿈퍼나눔마을은 지역의 어려운 가정환경에 처해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단체다. 여기에 안성교총 회장직을 맡고 있는 가온고등학교 교장 류희성, 안성시생활체육회 회장이면서 대림동산웨딩홀을 운영하고 있는 전공석 대표, 마지막으로 허리편한병원의 신철욱 이사장까지. 이렇게 일곱 명이 칠현회의 회원이다. 이들은 모이기 이전에도 평소에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왔다.

처음에 칠현회는 어떻게 결성되었을까? 모임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우연히 지강 스님과의 이런저런 대화 중에 ‘사회에 모범이 되는, 봉사와 기부로 모범을 만들 수 있는 그런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리하여 모임이 만들어졌다. 처음에 회원들은 모임의 정점이 지강 스님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덮어놓고 참여를 결정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의 일이다. 이후 모임은 자연스럽게 성장해 회원들은 회비를 오롯이 좋은 곳에 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좋은 곳이란 무얼 말할까? 그것은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아, 듣기만 해도 좋은 말이다.

이즈음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를 불신한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무관심은 이윽고 더 나쁜 정치를 낳는 악순환을 가져오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칠현회는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새로운 정치를 창조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어야 한다. 약자들과 소외된 이들 위에 군림하는 정치가 아닌,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정치. 칠현회는 그걸 실현할 참이다.

하지만 이즈음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이 그럴 능력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도울 여력, 즉 돈과 시간이 없다면 말로만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취재를 하면서 ‘나중에 이렇게 되면 봉사와 기부를 하겠다’는 다짐들을 가끔 접했다. 하지만 그 다짐들은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우리는 지금 무수한 다짐보다는 당장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그런 면에서 칠현회의 회원들은 훌륭하다. 그들은 가난한 가운데 마음만 넘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기부와 봉사의 ‘능력’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일가를 이룬 사람들로서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다문화가정이나 장애인의 결혼식을 올려줄 계획이다. 또 사각지대의 정말 필요한 학생을 발굴해 장학금도 줄 생각이다. 지강 스님은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최적의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즉 예식장 대표가 있고 집 짓는 사람 있고 돈 있고 각자가 가진 사회적 지위, 소위 ‘빽’이 있으니 결혼식 진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 이들의 다툼은 다만 결혼식 주례를 누가 볼 것인가 하는 것뿐이었다.

물론 칠현회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를 거리낌 없이 공표하기는 쉽지 않다. 생색내는가 하는 삐딱한 눈초리가 따라붙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칠현회의 남다른 철학이 있다. “선행이든, 기부든, 봉사든 몰래하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걸 내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요. 우리를 보고 다른 모임이 또 생기고, 또 그 향기가 전달되면 좋지 않겠어요? 그저 내가 다른 꿍꿍이, 욕심이 없으면 그뿐이에요.” 지강 스님의 말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다면 하는 거고, 좋은 일이라면 당연히 여럿이 하는 게 더욱 좋다. 그러니 감출 게 없고 일부러 드러낼 것도 없는 것. 스님이 ‘무주상(無住相)’을 말했다. 아, 그렇다. 무주상 보시, 보시하는 스스로를 비워버리는 보시,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생각이 원래 없는 보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미소, 칠현회의 보시는 무주상을 추구한다.

지강 스님은 누구나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허물어 남을, 사회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누구에게 불사해라, 마라 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나눌 것을 달라고 해서 나누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안 먹고 안 쓴 것으로 하는 것이 진짜 보시지요. 기부금 모으는 모든 단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우리사회에 ‘복지사업가’만 많아져서 문제예요.”

그래도 스님은 안성에 나눔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행복해한다. “처음에 내가 안성 왔을 때는 나눔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어요. 사회복지협의회 1년 결산을 하면 칠장사가 반을 차지할 정도였죠. 그런데 지금은 사방에서 나눠요. 그런 거 보면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스님은 이 칠현회가 오래가면 많은 사람이 동참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품고 있는 중이다.

84명의 직원이 일하는 허리편한병원도 그동안 어려운 형편의 환자를 치료해주는 등의 일을 많이 했다. 신철욱 이사장은 ‘돈은 나눠먹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또 성격이 괄괄한 그는 병원 의사들에게 이런 특이한 주문을 하기도 한다. “생살 찢어 돈 벌 생각하지 말라. 돈은 내가 벌어다 준다. 도둑질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하라”고. 이즈음 경기가 어려워 도둑질로 연명하는 병원이 없잖아 있다는 암시였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랫사람이 나쁜 짓하지 않고도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 어울리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지향이 비슷한 사람은 꼭 만나지게 된다는 말도 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뜻인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칠현회도 모일 사람이 모였고, 만날 사람들이 만났다는 느낌이다. 서로 비슷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만나 서로에게 기대 더 큰 마음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칠현회가 독수리 오형제처럼 우리 사는 세상을 지켜주었음 좋겠다. 성공한 사람은 타인의 부러움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존경이 따라오진 않는다. 가장 멋지고 존경스러운 것은 ‘모두와 나누기 위해 성공하는 사람’일 것이다. 어쩜 칠현회가 선례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황윤희 기자